"팀이 더 잘했다면 폐업을 막을 수 있지 않았겠어요?"

2025년 회고글을 쓰다 보니 이 질문을 빼놓을 수가 없군요. 개인적으로 신변에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약 2년간 치열하게 매달렸던 AI Agent 프로젝트가 개발 도중 중단되고 팀이 해체되었습니다.

덤덤한 마음으로 새로운 곳을 찾으려 면접을 보던 중, 면접관에게 저 질문을 받았습니다. 사실 묻기 전부터 스스로 수십 번 자문해본 화두라, 오히려 차분하게 그간의 생각들을 정리해 볼 수 있었습니다.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시장 상황을 복기해 볼수록 결론은 개인의 노력과는 조금 다른 차원의 문제였습니다.

  1. 시장 성숙도와 탑다운 의사결정

현재 AI Agent 시장은 전 세계적으로도 수익화에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LLM App의 대표 격인 ChatGPT조차 적자 구조를 벗어나지 못했고, OpenAI가 ChatGPT를 앱스토어처럼 만들거나 커머스 프로토콜을 도입하며 생태계 확장을 시도하고 있지만 아직 뚜렷한 성공 사례는 드뭅니다. 그나마 Claude처럼 개발자를 타겟으로 하거나, 기존 기능에 요약과 추론을 더해 생산성을 높인 경우가 생존해 있을 뿐입니다.

이렇듯 시장 자체가 지속적인 투자와 실험을 필요로 하는 단계였는데, 저희에게 주어진 동력은 예상보다 일찍 멈췄습니다.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그룹 차원의 탑다운(Top-down) 의사결정이었습니다. "ROI가 확실한 사업에 집중하겠다"는 전략적 판단이 내려졌을 때, 개별 팀의 기술적 성취만으로 그 흐름을 바꾸기란 현실적으로 어려웠습니다.

  1. 비결정적(Non-deterministic) 환경과 엔지니어의 역할

비즈니스적 상황과는 별개로, 엔지니어로서 AI 제품을 개발하는 과정 역시 도전의 연속이었습니다. 입력과 출력이 명확한 기존 시스템과 달리, 확률이 개입하는 비결정적 환경에 적응하는 데 꽤 애를 먹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는 '좋은 엔지니어'의 기준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막연한 기대보다는 해당 기능이 제공할 수 있는 AI 품질을 수치로 정량화하고, 그 한계와 확신 수준에 맞춰 UX를 역으로 제안하는 역량이 필수적이더군요.

구글의 이메일 자동 완성 기능이 좋은 예입니다. AI가 답장을 알아서 써주는 대신, 탭(Tab) 키로 사용자가 내용을 수락하게 만든 건 기술의 불완전성을 인정하고 인간이 개입할 여지를 남긴 영리한 설계였습니다.

반대로 AI 성능에 충분한 확신이 있다면, 당근마켓처럼 사진 한 장으로 판매 글을 자동 생성해주는 과감한 방식도 훌륭한 선택입니다. 이는 사용자에게 '빈 화면'의 막막함을 없애주되, 최종 수정 권한을 남겨둠으로써 효용을 극대화한 사례입니다. 제가 본 뛰어난 엔지니어들은 바로 이렇게 기술의 성숙도에 맞춰 최적의 UX를 PM/디자이너에게 역제안하는 역량을 갖고 있었습니다.

  1. 기술적 실체와 시장의 거품

지난 2년은 기술의 끝단까지 밀어붙여 본 시간이었습니다. 직접 제품을 만들어보며 비용과 한계를 겪어보니, 시장의 거품과 그 틈새의 사기꾼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메타버스나 블록체인 때처럼 기업의 실체 없이 공상 과학 같은 서사와 주가 상승만 이야기하는 경우를 경계하게 됩니다.

컨셉 아트와 비즈니스는 분리되어야 합니다. 아이언맨과 자비스를 그리는 것과 그것을 작동하는 제품으로 만드는 건 완전히 다른 영역입니다.

저희 팀 역시 기술적으로 훌륭한 '베스트 프랙티스(Best Practice)'를 구현해 냈습니다. 하지만 저는 프로토타입의 성공에 취하기보다, 냉정한 현실을 직시하려 했습니다. 냉정하게 말해, AI 제품의 프로토타입 그 자체만으로는 경제적 가치가 극히 낮기 때문입니다. 통제된 환경에서 가능성을 증명하는 것과, 실제 운영 환경의 수많은 예외 상황 속에서 안정적인 품질을 보장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남들이 화려한 청사진을 그릴 때, 우리는 그 뒤에 숨겨진 현실적인 문제들을 몸소 겪어냈습니다. 아쉽게도 개발은 중단되었지만, 현실적인 비용과 효용을 먼저 따져보는 습관이 남았습니다.